※대화체로 말씀하신 부분이 많아서 문맥에 맞게 조금 수정이 되었습니다. 내용이 많기 때문에 굵은 글씨 부분을 위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명확성과 정리를 위해 빨간글씨로 문단을 요약,정리 하였음을 참고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파란색 글씨는 성경말씀입니다.
설교시작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오. 나의 왕이시오. 내 인생의 인도자시오. 하나님 어느 곳에서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며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오늘도 이곳에 가득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가 내려놓습니다. 하나님, 나는 영입니다. 말씀도 영입니다. 예수님도 영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으로 기능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새로운 피조물의 계시로 욥기서를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찬양이 너무나 은혜롭고 많이 마음에 감동이 됩니다. 가사 한 달 한 글이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깨어서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새 피조물의 계시로 욥기를 보십시오."라고 욥기서를 한 두 주간을 나누어서, 한 주간에 하기는 너무 이게 범위가 조금 넓은 것 같아서 두 주간을 거쳐서. 욥기에 대해서 많이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은 욥기에 대해서 욥에 대해서 질문을 하든, 또 조금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왜 욥은 그랬어요?" 라고 말한다면은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이 말씀의 메시지를 알고 있지 않으면은 정확한 해답을 줄 수가 없죠. 그런데 우리가 그냥 말씀의 관점이 아니라 거듭난 우리가 새로운 정말 우리가 새 피조물인 우리가 그럼 여기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이해를 할 것이고, 어떻게 전할 것인가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 나눠보기를 원합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번역본도 쭉 보면서 이 개역성경에서 이 말씀에 대한 이해가 잘 안 되면은 또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다 볼 수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번역본도 보면서 이 비교를 하면서 보면은 이 모든 부분들이 다 이렇게 열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의 계시로 욥기를 보십시오." 라고 했는데 그러면 욥의 정체성은 어떤 사람인가? 라고 우리가 본다면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지식이 우리의 영에 대한 확신과 이 담대함을 불러오는 것을 우리가 오늘 이 욥기서를 보면서 보게 될 것입니다.
욥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 고백하고 또 우리가 치유와 부요의 삶을 살아간다 살아가지만 그러나 우리가 많은 이들이 욥의 예를 듭니다. 그렇다면 욥은 왜 고통을 당했습니까? 욥은 왜 고통을 당했죠? 라고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면은 아마 여러분들이 이런 질문들을 신앙생활을 하셨다면은 아마 이런 질문들을 받아보셨을 겁니다. 그럴 때 무엇보다도 우리가 오늘 이 욥기서를 보면서 욥기서는 한 편의 희곡이라는 것을 우리가 그 과정을 생각하고 욥기서를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욥이라는 사람은 가상 인물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기록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욥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앞에 이 부분 때문에 더 헷갈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라는 이 이름의 의미는 '박해 받는 자', '시험 받는 자' 라고 이 이름에 의미가 있다고 아 말씀합니다. 우리 욥기서 1장 1절을 보겠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이게 욥의 정체성입니다. 욥에 대해서 1장 1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욥에 대해서 에스겔 선지자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에스겔서 14장 14절을 또 우리가 한 목소리로 보겠습니다. 같이 봅니다.
비록 노아 ,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들이 여기서 볼 것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욥은 오래전에 실제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 다니엘 욥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라고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오래전에 실제 했던 사람이고 우리가 성경에서 보면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기라고 불리는 이 희곡은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하나님, 또 사단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욥의 아내가 나옵니다. 그리고 또 거기에 욥의 세 친구가 나오고 제 친구가 엘리버스 빌단 소발이 나오고 그다음에 이 젊은이 엘리후라는 젊은이가 나오는데, 모두 이 욥기에서 등장인물은 8명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정말 욥이라는 사람은 너무나 바르게 살아서 하나님마저도 하나님도 욥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욥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요. 성경을 욕을 우리가 읽어보면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의 뛰어난 삶을 보라고 오히려 사단에게 욥의 뛰어난 삶을 봐라 정말 신실하고 정직하고 바른 일을 하고 앞에서 우리 욥기 1장 1절에서 읽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단에게도 욥에 대해서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욥기 1장 7절을 한번 천천히 보겠습니다. 같이 봅니다. 1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사단이 우리들의 삶의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어야 됩니다.
자 여러분들이 이것을 보면서 사단이 하는 일들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단이 하는 일은 이 땅에 와서 여기저기 문을 열어놓고 있는 자가 없는지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 있는 자가 없는지 여기저기에 지금 사단이 오도록 기다리고 있는 자들 틈이 있는 자를 여기저기 두루 다니면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사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오늘도 우리가 고백했죠. 10장 10절에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도둑이라고 나오고 있죠.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이 이 사단의 전략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지금 이 땅에서 하여튼 우리 인간의 이 틈만 보고 있다는 것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부부관계 자녀와의 관계 또 우리 직장에서 인간관계 여러 가지 이 사이에 사단의 틈만 보면은 일한다는 것을 오늘 여기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 욥기 그 다음에 1장 8절을 우리 천천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은 우리가 아무 어려움 없이 잘 살기 때문에 죄 짓지 않고 산다고 속인다.
사단에게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너가 내 종 욥을 잘 보았느냐 이 땅에 가서 그 땅에 가서 욥이 하는 삶을 보았느냐 라고 말씀합니다. 그와 같이 순전하고, 순수하다는 거죠.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나쁜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야. 악을 떠난 자가 세상에서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 욥이다 라고 지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1장8절을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제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사탄이 뭐라고 말하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욥에게 축복을 줬지 않습니까? 아무 부족함이 없도록 자녀들에게 모든 재물에, 정말 쉽게 표현하면은 잘 먹고 잘 사니까 죄 지을 일이 없다는 거예요. 사단이 하는 말이 잘 먹고 잘살고 아무 걱정이 없는데 무슨 죄를 짓겠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도 별 수 없어요. 사단이 하는 말이. 욥도 별 수 없어요. 욥도요 고통을 한번 줘보세요. 어려움이 있으면은요, 욥도 그냥 하나님을 떠나는 거는 다 뭐 욥도 똑같다고. 이제 지금 하나님께 그렇게 사단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제한적으로 사단이 욥을 시험하라고 허락하십니다.
그럴 때 욥은 그렇지 않아 하나님께서 욥은 그렇지 않아 하면서, 그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한번 봐봐 네가 가서 테스트를 해도 욥은 나를 떠나지 않는 사람이야. 원래 신실하고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야 라고 사단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러면 너가 가서 욥을 건드려 봐 그런데 목숨은 건드리지 말고 해도 욥은 흔들리지 않어 라고 이렇게 말한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때 욥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제한적으로 이 도전을 이렇게 허락한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더 큰 그릇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단이 모든 것을 앗아가도록 허락하셨다는 이 사실 때문에 이 부분의 단어 때문에 항상 논쟁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허락하지 않았느냐고 이 재물을 다 빼앗아 가도록. 그래서 여러분 크리스천들이 보통 이렇게 합니다. "내 인생의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거두어 가셨다" 우리 끝까지 한번 봅시다. 정말 하나님이 그런 분인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지 어떤 지도자들은 또 욥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그의 두려움 때문에 그렇다라고도, 우리가 말씀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을 지금보다도 하나님의 뜻은 더 깊은 차원에서 존재와 또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그릇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나중에 결론을 보면은 그런 뜻이 있음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욥기 3장 25절을 우리가 이 믿음의 말씀을 하고 욥이 뿌린 씨를 거두게 된다. 이 두려워하는 것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 욥기 3장 25절을 한번 같이 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이 두려워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 만은 아닙니다.
욥은 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 욥기 1장부터 이렇게 여러분들이 읽어보세요. 완전히 정신을 못 차리잖아. 전부 다 빼앗아가니까 여기서 종이 이리 뺏어갔다 여기서 그 옆에 아들 딸들이 그냥 집이 무너져서 죽었다 뭐 동물들이 다 죽었다 다 빼앗겼다는 것을 이렇게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내가 "혹 이래 되면 어떻게 할까", "내 인생에서 이래 어려움이 당하면 어떡할까"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살아서 내 자녀들이 이렇게 되면 어떡할까" 나름대로 욥은 또 그런 생각을 했겠죠. 그래서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예 임하고 나는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내가 말한 그대로 어떡하면 이렇게 되지? 라고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사단이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라고도 이렇게 말씀을 이렇게 풀어내는 분들도,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 때문에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거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말이 우리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저와 여러분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 시작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고백하고 우리가 이렇게 찬양하고 하는 것도 온전히 말씀을 드릴 때, 이 말씀이 정말 내용에 잘 박힌 못과 같이 정말 우리가 강건하기를 원하는 게 우리 그리스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 욥의 3장 25절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욥의 전체 메시지가 이 두려움 때문에 욥은 어려움을 당했다라고도 말하지만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읽어보면은 왜냐하면 두려움의 결과만으로 이 욥기서를 전체를 요약할 수가 없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차근차근 읽어보다 보면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나중에 어떻게 됐습니까? 결국 모든 것을 다 빼앗긴 것 같지만 건강과 재산을 다 회복한 것을 우리가 마지막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보니까 야고보서에 결말에 우리가 주목하면서 야구 부스에서 우리에게 권면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업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다시 빚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더 온전한 그릇으로 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을. 우리가 욥기서를 또 보면 그것을 또 이렇게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욥의 고난의 과정만 보지 말고 고난의 결과도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을 우리 천천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사람들이 욥을 생각하면서 그가 받는 고난의 결과가 아니라 보통 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욥에 대한 이래서 욥이 정말 정말 고난의 결과보다는 고난을 너무나 많이 이야기합니다.
욥을 봐라 얼마나 그 어려움을. 왜냐하면 정말 그 피부병이 오고, 가려움 긁고 그 고통 가운데서도 아 정말 살았다라고 고난 자체에 대해서, 고난을 너무나 크게 이야기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우리가 성경을 잘 봐야 되겠다 라는것도 이렇게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욥이 경험한 승리를 생각하라, 그리고 우리의 본보기로 삼아라 라고 오늘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애초에 욥에게 권한을 허락해 주신 이유를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면 두 번째(제목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했는데 욥은 선한 사람인데, 왜 착한 사람이 왜 고난을 당하나? 이 질문에서 우리가 여러분들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욥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왜 욥은 그러면 고난을 당했습니까?" 라고 말한다면은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면, 성경을 보고 그런 점에는 대답은 간단한 거죠. 인생이 살다 보면은 뭐 우연히도 일어나는 거고, 믿지 않는 사람은 그래 말하겠죠. 그렇지만 이 질문은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자에게 이 어려운 질문이 질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전능하신다면서 왜 이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여러분들에게 질문한다면, 지금 이 새 피조물이 된 우리는 뭐라고 말씀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양육반을 하신 분들은 충분한 대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나면 이것이 전부 다 풀리게 되는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은 이 부분이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질문의 세 가지를 성경을 (통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첫 번째로, 요한1서 4장 16절을 한 목소리로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신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했죠.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권한을 제거할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까? 우리가 구약에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노예 상태에서도, 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신 장면들을 우리가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장년부나 청년부들이 지금 구약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데, 유다를 또 대적의 손에서 건지셨고, 우리 또 신약 성경을 보면은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시고 회복해야 되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과 내가 거듭나고 내가 영이라는 것, 새 피조물이라는 것을 내가 정확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모르면, 이 욥기서를 보면서 늘 퀘스쳔마크(질문)가 붙는 것입니다. 또 내가 퀘스쳔마크를 붙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할 때 정확한 해답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요한1서 4장 16절에서 첫 번째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고 정말 또 신약 성경에서도 병자들을 고치시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이다.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정말 하시는 사역이라는 것을 믿고 성경을 보면은 많은 부분들이 그냥 이렇게 클리어하게(명확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울 모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인식하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누가복음 1장 37절입니다. 같이 한 목소리로 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넘지 못하심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욥의 고난은 욥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만 고난을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서를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인지 욥의 말인지, 욥의 친구가 한말인지를 반드시 구분해서 봐야합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 선한 사람이 고난을 당한다. 왜 선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죠? 라고 한다면은 우리가 욥기 1장에서 욥이 어떤 잘못도 범하지 않고, 범하지 않는다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욥기 1장에서 보고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기에 있는 친구들이 비롯해서 그 친구들보다도 누구보다도 더 의로웠다라고 말씀하는 것도 우리가 욥기 1장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고난받는 것은 어떤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 아니라 동방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선했기 때문이다라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늘 유업을 자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욥의 친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들이 욥기서를 볼 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씀 또 욥이 대답하는 말인지를 잘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무조건 욥기서가 전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분류를 해서 보면은 충분히 이 욥기서를 보면서 여러분들이 충분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였기에 자신만의 변론과 조언을 해준 것이다.
그래서 제가 그 욥기에서 이렇게 보면서 그 친구들을 보면서 얼마나 그 친구들이 얼마나 그 욥을 사랑했는지, 욕의 그 고통을 보면서 그 막 피골이 상접했지 않습니까? 그 욥이 고통당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멀리서 친구 3명이 왔어요. 그 욥을 보면서 이 친구들이 7일 동안 울었다고 했어요. 정말 욥을 엄청 사랑하는 친구들이구나. 7일 동안 밤낮으로 울었다는 것을 보고 정말 이 욥이 그 땅에서 그때 살 때 참 많은 것을, 이렇게 참 이렇게 선한 삶을 살았구나 라는 것도 그냥 이렇게 내면적게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들은 욥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은 어려움을 당해도 정말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하나님이 사단에게 그 한번 봐라 지켜봐라 라고 이 욥기 1장에 있는 이 내용을 친구들은 모르죠.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잘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제 그 친구들이 자기의 나름대로 변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씩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은 이 거듭나지 않는 이 친구들이 감각적인 거나 또 많은 이 부분들의 이야기는 변론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게 대표적으로 그냥 딱 하나의 단어로 이야기하면은 "회개해라 너가 알지 못하지만 정말 하나님 앞에 잘못된 일들이 많을 거야." 그리고 "네 자녀들도 혹시 하나님 앞에 잘못된 거 있는 한번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봐 다시 기억을 해 봐" 라고 친구들이 전부 이 권면하는 것이 거의 내용입니다. 결론을 이야기하면은 너무 좋은 말도 많이 했죠. 거기에 대해서 욥은 "나는 잘못이 없어. 나는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게 없어"라고 요업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너무 고통이 심하니까 이제 욥이 이제 하나님 앞에 투덜거리는 모습도 보게 되죠. 그냥 하나님 나를 이 땅에 태어나지 않게 했으면은 내가 이런 꼴도 안 볼 건데 왜 나를 이렇게 태어나게 해서 내가 지금 이런 고통을 봐야 되느냐고 하면서 막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막 투덜대는 것도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사람은 의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전 구약의 사람들은 의인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제목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함과 완전함이 있다고 했는데 "욥은 선한 사람이었는가?" 라고 아까 우리가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 구약 시대의 의인은 없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래서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라고 우리가 보게 되면은 마가복음 10장 17절과 18절을 우리가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정말 여러분들이 확신합니까?
욥이 성경이 말하는 선하다고 말하는 이 의미를 볼 때 "착하다 정직하다지", 욥이 선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욥은 정말 이렇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의로 선하게 되었다는 거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하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또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자 바울의 말을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로마서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가 정말 신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는 누구도 의롭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들이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가 볼 때, 사람들이 볼 때는 선한 "저 사람은 진짜 착해, 저 사람은 진짜 선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진짜 죽으면 천국 갈 거야." 라고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겠죠.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착하고 선하게만 살면은 천국 가는 간다고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나 성경은 욥이 동방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었다고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이제 개역성경이나 거기서 보면 선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지만은 또 킹제임스나 다른 성경을 보면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번역 성경을 여러분들이 잘 보면서 읽어야 어 성경에 충분한 이해가 간다는 것을 아 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냥 의롭고 선했다는 뜻이 아니라, 너는 정말 선한 자야가 아니라 너는 이 세상에서 정말 착한 자야 순전하고 정말 정직한 자라고 킹제임스에서는 우리 1장 1절은 말하고 있잖아요. 정직한 자라고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사람이 보기에 인간들이 보기에 우리가 선한 사람이었지 가장 선한 인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죄인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 욥기서를 보면서 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욥도 예가 아니다. 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하나님하고 바른 관계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나를 위해서 장사되, 나를 위해서 부활하신 이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만 열심히 다닌다. 나는 선한 사람이야 나는 죽어도 천국가 아닙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정말 예수 그리스어가 나의 주인 나의 구주로 확실히 내가 영접을 해야 됩니다. 나는 예수님 믿어 나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신 것을 나는 믿어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내 인생에 인도대로 나는 믿어 하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만 다니면 착한 사람은 될 수가 있어요. 좋은 것만 선택하니까.
"나는 나쁜 일 해도 나는 교회 가니까 괜찮아" 이거는 안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 그 이름이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는 죄를 고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욥의 친구들과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나눈 장면을 우리가 같이 보기를 원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욥이 하나님의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 전체에 이들이 요업에 숨겨진 죄를 고백하게 하려고 엄청 그냥 욕을 막 노력을 합니다. 세 친구들이 빨리 "회개해라 너 알고 지은지 모르고 지은 죄 있잖아." 이래서 이 말이 욥기서를 보면서 이런 단어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너 빨리 "회개해 회개해" 라고. 우리가 어떤 내가 권의 확신이 없으면은요, 조금만 어떤 상황이 되면은 내가 하나님 앞에 뭘 잘못했지 내가 하나님 앞에 뭔 실수를 했지 하나님 알고 지은 줄 모르고 지은지 용서해 달라고 아닙니다. 아까 앞에서 사단이 뭐하러 이 땅을 두루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습니까? 그래서 이 친구들이 엄청 욥을 그냥 죄를 해결시키고 어떻게 하든 이 고난에서 벗어나게 할려고 하는 것들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욥의 친구들은 너무 보면은 여러분들이 세 번 얘기는 메시지 성경을 한번 보세요. 완전 달변가들이에요.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요. 이 친구들이 욥의 친구들이 엄청 욥에게 권면하면서 살살 이렇게 말했다가, 또 죄를 하나님을 회개하라고 막 이러는 부분들이 정말 많이 나와요. 우리가 대표적인 것은 욥기 8장 7절에 보면은 여러분 우리가 가게나 개업식 할 때 많이 보이죠?. 내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이거 뜻을 알고 나면 별로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은 꼭 개업식 할 때 그거 사다가 주는 것이 이게 욥기서에 나오는 것입니다. 욥기서 앞뒤 문맥을 한번 읽어보세요. 읽어보면은요, 욥의 친구 빌단이 한 말이거든요. 첫 번째로, 한 말입니다. "있잖아, 욥 지금 자네가 보잘것 없으나, 그러나 하나님 앞에 얘기하면은 나중에는 훨씬 더 좋아질 거야." 쉽게 말하면 훨씬 더 창대해진 커질 거야. 그러니까. 빨리 하나님 앞에 얘기해 너희 자녀들하고 한번 생각해 봐 너희 자녀들은 혹시나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게 없는가 한번 얘기해 봐" 라고 하면서 "지금은 네가 좀 약하지만, 나중에는 잘될 거야"라는 의미로 우리가 개역성경을 보면 "내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여러분들 그거 선물하지 마세요. 이 뜻을 알고 나면 이거 선물하면 안 돼요. 그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이 빌담이 그 성경 읽어볼 때 얼마나 애절하게 그 욥에게 어떻게 하든 죄를 회개시키고 생각나게 할려고 별 방법을 다 한 것을 우리가 욥기서를 보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욥의 친구들이 욥을 비난한 것도 막 이렇게 옳지 않는 것도 알게됩니다. 이제 우리는 욥이 어떻게 해서 지금 이 과정이 왔다는 걸 아니니까, 이들의 말은 영감된 것이 아니라 막 그냥 이렇게 자기들의 감동과 자기 나름대로 영감이죠.
회개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 내가 영이라는 정체성으로 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됩니다.
막 어떻게든 하나님 앞에 정신까지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된다는 이것을 했지만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 친구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되어져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이렇게 보면서 우리가 어떤 일이 상황이 아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내 인생에서 어떤 상황이 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은 첫 번째 나에게 오는 것은 열등감, 정죄감 이걸로써 나를 돌아보게 되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이 권세의 확신과 내가 새 피조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은 어떤 상황이 되면 이거부터 온다니까요? 내가 지난 주에 교회 안 가고 어디 갔더만, 예배를 안 드렸더만 하나님이 당장 이리 벌 주시는 이런 말 여러분들 많이 들어봤어요. 많이 합니다. 지금 전부 그 내용인 거예요. 욥기서에서 "우리는 어떻게 시작해야 합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하면 뭐라고 말씀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상황이 될 때 어떤 환경이 될 때 이거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거네? 나는 영이야 말씀도 영이야 예수님도 영이야 우리는 영이라는 것을 시작하는 겁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시작할 때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 우리가 정체감이나 열정감이나 죄책감 없이 우리가 맞서서 싸울 수 있고 우리가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내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에 대한 이 새 피조물에 대한 게시와 이 말씀을 정확하게 보지 못했고, 저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잘못했습니다 라고 비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물론 내가 잘못하고 실수 한 점이 있다면 회개,즉 돌이켜야 합니다. 그 기반에는 나는 영이다 라는 정체성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저희들도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은 이 구약이 율법적으로 우리가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되면은 아까 하나님 앞에 잘못된 건 회개해야죠. 회개하지 말라가 아니라 그것부터 정죄감과 열등감의 죄책감으로,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욥기서를 보면서 내가 말씀을 보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나는 영이야 부터 새 피조물들을 우리가 출발을 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경청하고, 옳지 않은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 세 친구들이 막 두 번,세 번 막 변론을 했거든요. 어떻게 하든 욥을 하나님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막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중에 이 젊은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엘리후라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이것을 보면서도 성경을 보고 많이 묵상하면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알구나. 우리가 엘리후를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사람은 남의 말에 경청할 줄 알구나. 하지만 그 친구들이 얼마나 변론을 하고 또 욥의 이야기를 해도, 꼼짝도 안 하고 끝까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중에 엘리후가 이제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욥기서를 볼 때 엘리후가 하는 말과 행동을 주의깊게 읽어야 올바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이 잘못 생각하고 말한 부분을 지혜롭게 정리해서 담대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제 욥기서를 이야기 할때는 이 엘리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욥기서를 정말 이렇게 제대로 보면은 이런 모든 부분들이 다 이렇게 보인다는 것을 저와 여러분들이 한번 이렇게 다시금 알게되고, 이제 구약과 욥기서를 읽을 때 그렇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엘리후가 이야기합니다. 제가 있잖아요. 제가 정말 어르신들한테 이 젊은이랬잖아. 어르신들한테 정말 이렇게 지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후만이 이 욥의 권한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고난에 대해서 정말 통찰력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이렇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엘리후가 욥의 권한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다 듣고 나서 이야기한 것도 인간의 창조, 인간의 모든 인류의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이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엘리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계시와 이 통찰력을 통해 욥과 세 친구들하고는 딱 다르게, 하나님께 책망받지 않았고, 욥의 고난을 바르게 보게 되었고, 바르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욥기서 32장 8절입니다. 같이 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우리가 그거 킹제임스로 보면은 "사람 안에는 영이 있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의 영감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신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나에게 여러분들의 전체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나에게 지금 깨달음을 준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엘리후를 볼 때 인간적인 지혜와 총명함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을 주고 어 정말 이렇게 계시를 열어준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그 엘리후가 한 그 일에서 첫 번째가 그 욥의 세 친구들에게 바르게 신앙을 잡게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욥과 세 친구들에게 욥기서 32장 11절과 12절을 보면은 잘 나와 있습니다. 천천히 여기서 32장 11절과 12절 한번 보겠습니다.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욥기서 33장1-6절을 보고 엘리후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주목해보세요
그렇게 하면서 33장 1절부터 이렇게 쭉 보면은 "내가 당신께 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내 모든 말에 좀 잘 이렇게 듣고 경청해 달라"고 지금 욥에게 부탁하는 것을 1절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보라 이제 내가 입을 열었고 내 혀가 내 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3절에 보면 "내 말은 내 마음의 정직함이 될 것입니다. 내가 정말 여러분들에게 욥 선생에게 욥의 어른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내 입술이 지식을 분명히 이렇게 말해야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4절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셨다"라고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은 "만일 당신이 내게 대답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 앞에서 당신의 말을 정연하게 시작하십시오." 6절에 "보라 내가 당신의 소원대로 하나님을 대신하노라 나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쭉 이렇게 읽어보면 엘리후는 욥에게 한 가지 이 근본적인 것을 결점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욥의 이야기를 듣고 욥 자신에게는 원죄가 없다는 것, 즉 "나는 죄 없다. 나는 정말 착하게 살았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 막 이렇게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 앞에서는 의로웠지만은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엘리후가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욥은 자신이 죄가 없다. 그래서 나는 죄의 저주를 받을 이유도 없다라고 해서 자신이 어떻게 고난을 당할 수 있는지 욥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이 때문에 더 욥이 괴로운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옵에게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따라서 죄의 저주 아래 있으며, 여기에서 질병과 가난이 포함된다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욥기서를 오늘 전부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에 할 때 완전히 결론을 내드리겠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는 의인으로 거듭났습니다. 더 이상 죄의 저주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욥기서의 정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제목이 "새 피조물의 계시로 욥기를 보십시오" 입니다. 우리가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가 되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거듭날 때 새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과 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이런 자입니다. "욥이 단순히 이전보다도 더 부유해졌다. 고통은 당했지만, 더 부유해졌다." 이게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전보다 더 깊이 마지막에 우리가 다시금 이래 보면은 더 깊이 하나님을 아는 자로 됐고 정말 이렇게 변화되고 성장된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내가 정말 이래 착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이것도 당연하지만은 진짜 예수 믿는 것, 우리가 교회 와서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신 것을 내가 마음으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입으로 지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거를 하지 않으면은요, 그냥 절에 가나 어디 가나 똑같은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인은 분명하게 입으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결론만 먼저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다스릴 우리가 통치권이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다스릴 통치권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즉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권세를 사용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각적인 상황이나 사실보다는 진리를 붙잡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은 이 욥기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이것을 인용하면서 이게 정죄받고, 또 좌절하고, 낙심되고 우리가 죄인의 영역에서 살아간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 예수님을 하나님의 자녀로 정말 우리가 구원받고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사들은 이 권세와 능력을 받았고 우리는 새 피조물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담대하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고, 언제나 아버지 앞에 우리가 당당하게 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았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누구가 욥에 대해서 물을 때도 바른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요약
욥기서를 볼 때는 하나님의 말인지, 욥과 세 친구들의 말인지를 잘 알고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욥은 예수님의 오시기전의 인물로 아직 죄인의 한계를 가진 사람이 였습니다. 욥은 세상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고,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죄인이였습니다. 교회에만 출석한다고 구원받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내 인생에 주님으로 삼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거듭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의인으로 보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진 권세와 위치, 즉 정체성을 완벽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감각적으로 살지 않고, 영으로 기능하는 삶을 삽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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